영화 오디세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는 신화로만 존재한다.

August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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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의 세상엔 왕궁과 교역과 언어가 있었습니다. 우린 그 모든 걸 파괴하고 나서야 깨달았죠.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 작중 오디세우스 대사

수많은 약속 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은 개인으로 인정받아 보호를 받는다. 어떤 항목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법이 우리에게는 신이다. 그리고 황금기 몇 십 년은 평화롭게 지내왔다. 언젠가부터 다시 검은색 잿바람이 불어왔고 전황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구 반대편까지 소식이 전해졌다. 평화의 약속은 깨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크고 작은 국가가 세워지고 망하면서 몰락의 원인만 다양해지고 있다. 오천 년 전 청동기 시대에도 상황은 같다. 우리가 ⌜오디세이⌟나 ⌜일리아스⌟ 같은 고대 신화에 아직도 감명을 받는 것은 세월을 관통하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얻는다.

이번 영화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한국 사람들은 운이 좋게도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만화책을 통해 꽤 친숙한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 승리 이후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다룬 얘기고, 귀향 후 왕권을 다시 찾기 위한 계략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한 그리스의 고대 신들의 개입이 이루어져 여정이 신화처럼 여겨지게 한다. 과연 이런 작품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통해서 어떻게 영화로 옮겨질지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신 위에 인간


저걸 봐. 누가 저 구름을 움직이고, 새떼를 이동시킬까? 누가 저 하늘에 어둠을 내릴까? - 작중 아테나 대사

역사적으로 인간 한 명에 대한 권익이 현대처럼 보장되고, 주체적인 활동이 가능한 적은 없다. 과학이 미신을 걷어내 인간은 독립된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은 신과 마법의 시대였다. '제우스의 법'에 따라 그리스 사람들은 부랑자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호의를 베풀어야한다. 신에게 바쳐진 제물은 신에게 전달이 되어야 했다.

영화 내에서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사람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게 그려진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우들을 위해서라면 신들과 맞서겠다고 한다. 천둥 소리에도 제우스의 분노라고 벌벌 떠는 그리스 인들과는 달리, 그는 닥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이용한다. 십 년 동안 트로이 전장에서 전우들이 죽어나가던 때에,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에 입성하는 계략을 짜는 것도 그였다.

언뜻 오디세우스를 주제도 모르고 오만하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에우릴레코스가 폭풍우로 인해 위태로운 배 위에서 '포세이돈에게 엎드려 잘못을 빌어라'고 애걸복걸 요청할 때도, 오디세우스는 침묵한다. 어느 누가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신들에게 노여움까지 얻으려 하겠는가? 오디세우스는 그런 상황까지도 본인이 정신만 차리고 있다면 통제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자신의 함선이 반토막이 나서 홀로 표류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디세우스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드러내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특성도 오디세우스에게 엿보인다. 영화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오디세우스의 어깨에 큰 책임감을 지우게 된다. 신에게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행한 선택의 결과가 나쁘다면 개인의 죄책감으로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로 인해 귀향하는 여정에서 길을 잃게 된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도움으로 한 사람의 인간성을 되찾게 된다. 그것은 오디세우스이 잃어버린 기억도 있겠지만,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는 것도 포함된다.

트로이와 이타카를 같이 불태우다


에우마이오스: 왜 늘 활시위를 튕기세요?

오디세우스: 경고해주려고

에우마이오스: 사냥감에게요?

오디세우스: 명예롭게 싸워야지

오디세이의 명장명 중 하나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와 페넬로페의 시험에서 활시위를 활에 얹고 튕겨 소리를 내는 장면이다. 오디세우스는 사냥을 할 때도, 사냥감에게 예를 갖추려고 했다. 그런 그가 트로이에서는 속임수(trick)를 써서 승리를 쟁취했다.

그리스 연합군은 그 결과로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었지만, 오디세우스는 그로 인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문명에서 신성시하는 약속을 깨버리고 실리를 취해버렸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이용한 것이다. 트로이 목마에 숨어 트로이 성에 진입한 연합군은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문을 전쟁 10 년 만에 열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가 저지른 짓으로 인하여, 한 도시가 불타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가 정말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약속을 깨버렸다는 사실이다. 작게는 약속이지만 크게는 규율이고, 현대에 와서는 법이다. 그리스의 문명이 작동하는 톱니바퀴를 사실상 그가 망가뜨린 것이었다. 한 번 신뢰를 잃어버린 약속은 지속해서 지켜지기란 어렵다. 사실상 문명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노래를 통해서 전해지는 그의 트로이 전쟁 속 기지는 신화인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그런 선택도 가능하다는 일종의 암시가 되어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저지른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문제는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역사를 기억하라


어둠에 잠긴 세상 위로 새로운 여명은 밝아오고. 우리의 잘못은 다시 한 번 잊혀지겠지. - 작중 오디세우스 독백

나는 오디세이의 주제는 '기억'이라고 정리한다. 영화 오디세이는 이야기 흐름이 비선형적으로 진행된다. 로토스를 먹어 기억을 잃은 오디세우스가 과거 자신의 기억을 점차 찾아가는 식으로 보여준다. 하나씩 그의 함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고, 결국 그가 사랑했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고향을 기억해낸다.

트로이 목마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리스 병사 시논이 오디세우스에게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가서 죽은 전우들을 기리라'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시논의 복수와 함께 꼭 그러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는 그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잘못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가 전쟁이 끝나고 또 십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트로이 성벽을 무너뜨리면서 고향 이타카를 똑같이 불태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사실상 오디세우스의 영화 마지막 독백은 오디세우스를 통해 전한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오디세우스의 말처럼 푸념어린 말 그대로가 아닌, 그러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지식이, 기억이, 부조리에 맞서는 무기가 될 것이고, 이것으로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타카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왕의 모습이 아닌 식사를 동냥하는 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의 노래로 전달되는 영웅의 귀환이 아니었다. 물론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왕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하지만, 영화에서는 곧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서쪽으로 다시 여정을 떠나버린다. 아내와 시논의 약속을 지키고, 전장에서 죽은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