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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개인의 문제인가 시장의 문제인가

Septembe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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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전쟁터

주인공 만수는 평생 동안 제지산업에 종사했다. 현실에서 제지산업은 요근래에 많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종이를 사용할 일이 줄었다. 또한 환경 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업계에 비난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산업의 성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줄어든 취업문에 고전하는 가장의 대응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작중 만수는 가족들에게 지금 전쟁 중이라고 한다. 아차 싶었던지 가족끼리 싸우는게 아니라 외부의 적들과 싸운다고 정정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사회를 전쟁터라고 곧잘 표현한다. 해고되지 않고 승진하기 위해 치열한 상황을 빗대어서 표현한 말이다.

전황이 손바닥 뒤집듯 변하듯이, 세상 또한 변한다. 20대 때 배운 내용만으로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전쟁은 상대 군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면 끝이 난다. 하지만 사회는 전쟁터와는 다르게 타인을 해칠 수 없다는 규칙이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어쩔수가없다”는 통념을 위반하는 이야기를 겪어볼 수 있다.

넌 하나도 변한게 없어

실직을 하고 술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구범모도 영화의 인물로 등장한다. 대개 작품에서 이런 인물은 완전히 부정적인 역할로만 표현된다. 하지만 “어쩔수가없다”의 범모는 어쩐지 가엽게 느껴진다. 취약한 개인을 표현했기 때문이라 본다.

범모는 평생 종이와 함께한 사람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제지공장 관리업무 뿐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인 음악듣기로 카페를 열어 운영하자던 아내의 조언도 딱히 귀담아 듣지 않는다. 범모는 변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범모에게 연민을 갖게된다. 나 또한 범모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모는 안타깝지만 그렇게 사랑한 자신의 아내한테 총을 맞고 죽는다. 근데 나는 이미 불륜을 목격한 순간부터 그는 죽어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술독에 빠지고 다른 사람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오디오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일으켜 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범모에게 연민은 느껴지지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이유이다.

심지어 작중에선 연민을 느끼는 사람의 말로도 보여준다. 시조는 만수와의 공통분모인 딸과 실직이라는 말에 혹해 함정에 빠저버렸다. 취업경쟁에서는 연민도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납득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선이 사라졌다. 법에서 살인은 명확하게 징역 그 이상의 형을 집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만수의 죄가 드러난다면 그는 살인죄를 받고 감옥에 가야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나는 만수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좋지많은 않았다. ‘문 제지’라는 회사 화장실까지 찾아가 임원에게 무릎 꿇고 이력서 한 번 봐달라고 하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재취업센터에서 얼굴을 두드리며 “다시 태어나자”고 자신을 다독이던 장면도 떠오른다.

혹시 우리가 만수라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의식도 문득 떠올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까지 그는 여러 수모를 겪었고, 믿고 있는 가족에게서도 밀려나고 있었다. 아예 그의 행동을 이해해 버리기로 한 아내의 선택은 또 어떠한가. 천치인 척,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있지만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끝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눈을 감아버린다. 설마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던 막내딸 리완이도 마지막에 각성해서 훌륭한 첼로 연주를 보여준다.

어떻게해서 만수를 나무라기만 할 수 있을까?

마무리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 아무리 만수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해도 방식은 크게 잘못되었다. 애초에 나는 살인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만수같은 사람이 이 세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낭만 없는 곳일 될 것 같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모든 사람이 충분하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중이다. 처음 직장에서 여러 사람과 일을 하며 공장을 돌리는 모습과, 만수가 모든 것을 이뤄 들어간 마지막 장면 속 공장 기계들과 일하는 모습을 보며 현대판 모던타임즈가 되려나 생각했다. 체계에 다시 편입되지 못하는 개인에게만 노력 부족이다 탓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만수를 조금이라도 응원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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